Bongjun Jang

Korea Meritocracy

학교 도서관에서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저)를 읽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님의 블로그 기록을 보고 따라 읽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한국의 능력주의를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논리를 강화하고 지대추구 행위를 촉진하는 장치로 규명한다.

자기표현 가치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관점은 자기표현 가치와 생존적 가치의 대비였다. 대개 사회가 경제 수준이 발전하면 생존적 가치가 중요한 사회에서 자기표현 가치가 중요한 사회로 이행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도 자기표현 가치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기표현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표현 가치란 무엇인가? 영문 위키에서 Self-expression Values라는 문서를 찾을 수 있다. 영문 위키를 짧게 요약해보면, 자기표현 가치는 사회적 관용, 삶의 만족감, 표현의 자유, 자유를 위한 갈망을 포함하는 가치 집합이다. 미시건대 교수 로널드 잉글하트가 제시한 개념이다.

문화권마다 전통적 가치와 세속적 가치, 그리고 생존적 가치와 자기표현 가치 중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표시한 그래프다. 원본은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Contents.jsp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유교문화권에서 가장 생존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나라로 측정되었다. 생존적 가치란 경제적 능력을 쌓고 신체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한국인의 삶은 생존경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모두 어떻게 하면 더 안정적인 삶을 살며 더 인정받고 정상적인 가족을 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 이외에 더 다양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일반적"이지 않고 “도전적"이다.

자아실현 욕구가 “일반적"으로 실현되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사회의 부속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다소 날카로운 생각이라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과감하게 않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떠올려본다. 아마 한국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예측해본다.

지대추구 행위

한국의 능력주의가 자기표현 가치를 억누르는 문화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한경쟁 사회를 정당화하는 테제인 능력주의는 경제적으로도 역효과가 크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능력주의가 지대추구 행위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지대란 땅의 사용료를 받는 행위를 말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일반화하여 실질적인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소유권을 통해 이득을 얻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전문직 쏠림 현상, 학벌주의 문제를 보자.

모두 한정된 지위(정규직, 전문직, 학벌)를 소유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이 핵심이다. 한번 지위를 소유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을 얻는다.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얻는 경우가 많아진다. 왜곡된 보상체계는 건강한 경쟁을 저해하고 사회의 생산성은 하락한다.

조선은 과거제도로 전국의 유능한 인재를 모아 나라의 굳건한 기틀을 잡았다. 조선의 법적 신분은 양인과 천인뿐이었고 과거 급제를 통해 양반가가 탄생하는 식이었다. 과거는 양인에게만 열린 시험이었으나 행정오류로 천인이 급제하더라도 양인으로 인정하는 등 신분제 사회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 양반가가 되면 후손들은 계속 양반이 되었다. 국가의 실질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양반가, 즉 지대추구 행위자가 늘어나면서 조선의 국력은 쇠퇴한다.

나는?

에필로그에 최후의 능력주의자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서 정곡을 찔렸다. 청소노동자를 보며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는 사람을 나무라는 도덕적 우월감에 대한 에피소드를 예로 든다. 최후의 능력주의자는 “공부 안하면 저렇게 다른 사람을 나무란다"는 사람을 나무라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 “공부 안하면 저렇게 다른 사람을 나무란다"는 사람을 나무라는 사람은 어떤 것이 문제인가? 그는 능력주의의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몸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한국 능력주의의 문제점은 이상적 능력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순 시험점수로 사람을 나열하고 이에 따라 보상을 주는 현행 체제는 사람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장치다. 아무리 이상적인 능력주의를 실현하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불평등이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큰 사회에서는 자살율과 살인율이 높으며, 행복하지 않고 사회 신뢰가 낮아지며 경제 발전도 느려진다.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