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ocked out
최근에 다시 달리는 것을 시작했다. 예전 기숙사에 살 때는 학교 캠퍼스를 한바퀴씩 (대략 5km) 달리고는 했었지만, 기숙사에서 나오고 나서는 그만뒀다. 하지만 이번에 아예 운동 주종목이 달리기로 바뀌었다. 몇년동안 운동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력으로 했으니, 달리기로 종목을 바꾼 것은 꽤 극적인 일이다. 근력 운동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보통 달리기를 하면 근손실이 올까봐 두려워 한다. 과감하게 떨쳐내어버렸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달리게 되었는가? 철저한 우연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학교 도서관에 없어서 원서로 빌려 읽었다. 아마존에서도 The Comfort Crisis라는 제목으로 찾을 수 있다. 현대 사회가 주는 육체적 편안함에 익숙해져 오히려 현대인들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극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정말 그런가? 이 책이 주장하는 대로, 인간이 오래 달리기 위해 진화했다는 사실이 정말이라면 달리는 것이 극적인 경험에 도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기 싫다는 생각을 누르고 오래 달리기를 해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5키로보다 긴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마치 명상을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명상에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히 말해보자면, 명상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행위다. 감각기관으로부터 느껴지는 것 외의 모든 것을 차단해야 한다. 더 나아가면 감각과 자의식이 분리가 되는 것을 느낀다.
내 경험상 달리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감각기관의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 첫 스텝이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가까운 러닝코스로 나간다. 첫발을 내딛으며 뛰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발끝과 다리, 그리고 코와 폐에 집중한다. 다리가 잘 착지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공기의 흐름이 코끝에서 폐 깊숙한 곳으로, 그 다음 내몸밖으로 자연스레 나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감각기관에 집중하며 이 상태를 지속하다보면 그 이외의 생각은 모두 사라진다.
그다음으로 자의식이 내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더 이상 발끝의 감각과 코로 느껴지는 공기 흐름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모든 일이 자동으로 일어난다. 1킬로미터가 마치 이삼백미터쯤으로 느껴지고 순식간에 코스의 마지막에 다다른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느새 마지막 지점까지 1, 2킬로미터만 남아있다.
영어로는 이 상황을 Locked-out이라고 한다. 원래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키를 잃어버렸다거나, 도어락이 고장나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 쓰는 말이다. “I’m locked out. I lost the key.” 의식이 몸과 분리되고, 무엇인가에게 몸의 주도권을 빼앗겨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표현인 것이다.
이 상황은 집중(Focus)과는 다르다. 집중은 노력이 필요하다. Locked-out 상태는 노력이 필요가 없다. 그러나 Locked-out 되려면 집중이라는 첫 스텝이 반드시 필요하다. 명상을 하면 감각에 집중하다가 결국 편안해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달리기도 발끝과 코끝에 집중하다가 결국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 뛰어본 적이 없는 12킬로미터라는 거리를 달리면서 걱정을 잊었다. 뛰고 들어오면 너무 힘들어서 샤워를 하고 바로 쓰러져 잤다. 그 이후로 한번에 15킬로미터를 달리기도 하고, 점점 습관이 붙어 이제는 일주일에 누적 20킬로미터 이상을 달리고 있다. 몸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천천히 가기도 하고, 목표했던 거리까지 끝까지 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가서 뛰려고 한다. 점점 10킬로미터 이상 달리는 것이 편해지고 있다. 하프 마라톤에도 도전해보려고 한다.
최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도 읽었다. 유명한 작가라고만 생각했는데 풀 마라톤과 철인3종을 거침없이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새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Locked-out 상태가 찾아왔구나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