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시팅 쿠폰 실험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모든 경제활동에서 우리는 값을 치를 때 화폐(money)를 사용한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먹을 때, 쿠팡에서 생필품을 주문할 때, 월급을 받을 때, 용돈을 받을 때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거래를 할 때 사용되는 모든 것들을 화폐로 본다면 KRW, USD, EUR와 같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종이화폐 외에도 금이나 은, 암호화폐 등 모든 것이 화폐가 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전쟁이나 대공황 같은 때에는 응급약품, 술, 마약, 간편식품(라면 등), 물이 화폐로 기능하기도 했다.
우연히 1970년대 베이비시팅 쿠폰을 활용한 재미난 실험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이보다 화폐경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없는 듯해서 정리해서 공유해본다. 시작해보자.
실험을 어떻게 설정했을까
실험에는 약 150명의 커플이 참가했다. 다른 커플의 아이를 돌봐준다면 다른 커플들도 자신들의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150명의 커플들은 다음 사항에 약속했다,
- 쿠폰을 획득하는 법 : 1시간동안 자신의 아이를 돌봐준 다른 커플에게 쿠폰을 줄 것
- 쿠폰을 사용하는 법 : 이 쿠폰을 사용하면 다른 커플이 자신의 아이를 1시간동안 돌봐줄 수 있음
이런 약속이 없다면 반드시 자신의 아이를 돌봐준 커플에게만 아이를 맡기지 않아도 된다!
쿠폰을 통해 1시간동안 아이를 돌본다
는 가치를 교환하는, 베이비시팅 화폐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결국 서로 아이를 돌봐주지 않으며 침체에 빠지게 된다. 왜 그랬을까? 실험에 참여한 커플들이 모두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면 돌보지 않겠다는 이기주의에 빠진 것일까? 하지만 실험을 시작할 때, 커플들은 모두 쿠폰을 받으며 다른 커플의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게다가 쿠폰을 사용하면 아이를 맡기고 외출을 할 수도 있는 장점도 있다. 도대체 이런 침체가 왜 발생한 것일까?
쿠폰이 부족해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커플들의 이기주의에 있지 않다. 이 실험에 누가 참여하더라도 이런 문제를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미래를 위해 대비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실험에 참여한 커플들은 불가피하게 아이를 맡기고 외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비해서 쿠폰을 최대한 많이 쌓아두려고 했다. 그래서 특별히 외출할 일이 없을 때는 다른 커플들의 아이를 돌보며 쿠폰을 열심히 모았다. 게다가 아이를 맡기고 외출을 해도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쿠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쿠폰을 모으는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실험 참가자 중에 쿠폰을 사용하려는 커플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를 쿠폰의 유통량이 줄어들었다고 표현한다.
결국에 모두 쿠폰을 모으려고만 하지, 쿠폰을 쓰려고 하지 않아서 쿠폰 유통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이 문제를 인식한 참가자들은 한 달에 두번은 외출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규칙을 만들어서 쿠폰을 사용할 수 밖에 없도록 했지만 이것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마도 반대급부로 쿠폰을 얻으려는 경쟁이 더 치열해져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났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이 충분한 쿠폰을 모으고도 사용할 쿠폰이 남아있도록 더 많은 쿠폰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커플들의 아이를 돌보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커플들 때문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커플들이 너무 적은 쿠폰을 얻으려고 경쟁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쿠폰을 너무 많이 발행해도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유통되는 쿠폰이 너무 많아지면 쿠폰이 너무 흔해져서 쿠폰을 받으려고 다른 커플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 경우가 생기거나, 1시간에 한 쿠폰을 받는게 아닌 쿠폰을 여러개 받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
쿠폰을 빌려줄게
커플들이 쿠폰을 쌓아두지 않고 사용하도록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쿠폰을 빌려주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쿠폰을 빌려서 쓸 수 있다면 굳이 쿠폰을 많이 쌓아둘 이유가 없다. 정말로 급하게 필요하다면 쿠폰을 빌려쓰면 되기 때문에 이전처럼 많은 쿠폰을 쌓아두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 제도를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패널티를 주면 된다. 빌려간 쿠폰보다 더 많은 쿠폰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있으면 이 패널티를 이용해 쿠폰의 유통량이 지나치게 늘어나거나 줄어들 때 위기가 오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춥고 어두운 날이 많은 겨울에는 사람들이 외출을 꺼린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쿠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쿠폰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이럴 때는 쿠폰을 낮은 패널티로 빌려줌으로써 쿠폰을 사용하는 게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대로 날씨가 좋은 봄여름철에는 외출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쿠폰을 빌리려면 높은 패널티를 지불하게 함으로써 쿠폰을 쓰는 게 불리해지도록 할 수 있다.
그래도… 쿠폰을 쌓아둘거야
하지만 이런 제도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패널티없이 쿠폰을 빌려주더라도 사람들이 쿠폰을 쌓아두려고 하는 경우다. 원문에서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는데, 은행에서 거의 0퍼센트에 가까운 이율로 돈을 빌려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돈을 저축하려고 하지 소비하려고 하지 않아서 경제가 침체된다는 것이다. 금리를 0보다는 더 내릴 수 없는데 경기가 침체되면(미래에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더 저축을 하려 할 것이고 이는 다시 경기침체의 원인이 된다.
생각해볼 점들
이 실험을 관찰하다보면 실제 화폐경제시스템과 유사한 점을 많이 볼 수 있다. 쿠폰을 사용하려는 것을 사람들의 소비성향, 쌓아두려고 하는 것을 저축성향으로 볼 수 있고 쿠폰을 빌려주는 것을 대출제도와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 다룬 주제들을 이용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 금본위제 폐지: 경기 침체의 원인은 유통 화폐의 부족이다. 화폐를 자유롭게 발행하려면 금본위제의 폐지는 필수적이었다. 금본위제에서는 금광을 추가로 발견하지 않는 이상 화폐발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인플레이션: 사람들은 자산이 계속해서 늘어나기 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산을 모으면, 즉 저축하면 화폐 추가발행 없이는 화폐 유통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즉 중앙은행은 화폐를 계속해서 더 많이 찍을 수 밖에 없다. 화폐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되어있다.
- 무엇을 위해 일하는걸까?: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화폐를 찍어낸다면, 우리가 일해서 받는 돈도 결국 중앙은행에서 찍어낸 화폐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화폐라는 환상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일까?
원문 읽기 https://slate.com/business/1998/08/baby-sitting-the-econom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