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jun Jang

2019 Vagabonder 1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을 써라.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여행을 하며 많은 사진을 남겼지만 정작 글로 남긴 것이 많이 없다. 여행을 마친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의 기억력을 믿고 치일피일 미루던 것이 지금까지 오고야 말았다. 기억을 되살리고자 마음을 다잡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만 나이 20세, 나의 123일 유라시아 여행기.

2019년 7월과 8월은 덥고 피곤했던 여름이었다. 여름방학기간 동안 일년동안 달려온 2019 ICISTS 프로젝트를 끝내고 정신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팀원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하루에 세네시간 밖에 못 자면서도 해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공부로 스트레스까지 쌓여있어 휴식이 절실했던 상황이였다.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다음 학기를 휴학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스트레스를 이겨낸 친구들에게 존경의 말을 건넨다.) 지난 겨울 일본을 여행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세계여행가의 블로그를 보고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스트레스도 있겠다.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학교 생활에 질려버린 것도 있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이 세계여행가의 블로그를 보려면 https://likewind.net 로 가면 된다. 정말 감명을 많이 받았다.

부모님의 허락을 맡고 은행에서 돈을 준비했다. 그동안 모은 돈이 다 합쳐보니 700만원이 조금 더 있었다. 첫번째 행선지 블라디보스톡 빼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한국 여권으로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키는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계획 세우지도 않았고 돌아오는 날은 계좌에 돈이 다 떨어지는 날로 정했다. 700만원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2019년 8월 25일. 제주에 있던 집을 떠나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선 다호형이 여행 전날 하루밤을 재워줬다. 다호형 아버지께서 내가 세계여행을 간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멋있다고 응원해주셨다. 관심분야가 나와 공통점이 있으셨던것 같다. 할리 데이비슨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다시 만나는 날이 있으면 재밌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통해 하루밤 재워줘서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2019년 8월 26일.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준비했던 항공편의 수하물 용량보다 내 배낭이 더 무거웠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묘한 눈빛이 오고갔다. 준비한 여행 짐을 버리고 가야될 판이었다. 그 순간 데스크에서 직원분이 즐겁게 여행하시라고 넣어주신다고 말을 꺼내셨다. 내 눈빛이 간절했나?

블라디보스톡에는 새벽에 도착했다. 시내로 향하는 기차 첫 편이 올 때까지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벤치에 누워서 잠을 자려는 데 왜 이리 잠이 오지 않는지… 여행을 같이 온 승민이는 잘만 자던데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유래없는 폭우가 쏟아지고 길에 물에 잠기고 있었다. 원래 비가 잘 오지 않는 곳이라 배수시설도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아스팔트 길 위로 사람과 차와 물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첫날 예약했던 숙소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도에 찍힌 장소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고있는데 우리와 같은 차림새의 여행객 커플을 만났다. 그 커플도 우리가 찾고있는 그 호스텔을 찾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애를 먹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이 호스텔은 간판이 넝쿨에 가려져서서 건물 바깥에서는 도저히 호스텔이라고 상상하기가 힘든 곳에 있었다. 들어가보니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부킹닷컴 최저가 호스텔이라 다들 돈을 아끼려고 같은 마음에 모인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첫날은 젖은 신발과 짐을 말리는데 시간을 보냈다. 다음 여행을 할 때는 방수가 되는 신발을 준비하고 말리라… 젖은 신발에 휴지와 신문지를 구겨넣고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비가 그치면 어디로 가볼지 고민했다.

다음날 아침 베드버그가 나왔다. 내가 물리진 않았지만 하얀 수건에 남은 핏물 흔적이 베드버그가 확실했다. 바로 숙소를 옮겼다. 여행 초반부터 홍수에 베드버그까지 겪으니 정신이 없었다. 숙소를 옮기니 어느새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기차에 탈 준비를 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기차에 타면 먹을거리는 직접 준비해야하기 떄문에 기차에 탈 시간을 고려해서 먹을 음식을 마련해야한다.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하루종일 굶은 날도 있었다. 정말 잘 준비해야한다. 러시아 기차여행에서 필수식량은 Доширак이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팔도 도시락 컵라면의 러시아 수출버전인데 다쉬락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큰 인기가 없지만 러시아에서는 엄청 많이 팔리는 컵라면이다. 정말 어딜가나 있다. 기차 안에서도 팔고 컵라면 뿐 아니라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는 메시 포테이토 도시락도 있다. 식빵과 잼이나 누텔라같은 걸 챙겨도 좋고 소시지같은 걸 준비해도 좋다. 빵은 부피가 작아서 많이 챙길수 있기 때문에 배낭여행에 제격이다. 그리고 휴지는 반드시 준비할 것! 기차 안에서 뜨거운 물은 마음껏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우려먹을 티백같은 걸 챙기기로 했다. 기차에 탈 준비도 마치고 승민이와 블라디보스톡에서 먹을 수 있는 대게와 보드카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8월 29일 3일치 식량을 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2등칸이라 4인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와 승민이, 하바롭스크에서 휴가를 온 가족이 같은 칸을 썼다. 아저씨는 블라디보스톡이 겨우 20도밖에 안해서 따뜻하기 때문에 여름휴가를 왔다고 그랬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여름휴가를 떠나는 우리는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긴 하다. 아줌마는 이정도면 따뜻한거라고 웃으면서 말해줬다. 잠들어 있는 아기가 귀여웠다. 추위에 강한 러시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이 안되는 곳에서 러시아어 Далеко를 배우고 있다

그 날 새벽 기차는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고 나는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20도로 따뜻하던 날씨가 북쪽으로 이동하니 영하 5도로 떨어졌고 한기가 올라와 잠에서 깼기 때문이다. 이르쿠츠크까지는 3일이 걸릴 예정이었다.

북쪽을 향해 달리던 기차는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에 도착했다. 하바롭스크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로 블라디보스톡으로 여행온 가족과 헤어졌다. 비록 12시간이지만 우리의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준 가족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겨우 스무살짜리 두 명이 외국에서 이렇게 돌아다는 것이 걱정이 되셨는지 러시아에서 범죄를 조심하라며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조언을 들으며 짧게나마 러시아어를 배우기도 했다. 하바롭스크에 정차한 30분동안 우리는 사진을 찍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더 많이 사진을 남길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차로 3일. 생각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기차 바깥에서 3일은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기차에서는 인터넷도 안되고 휴대폰 충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기차 안에서 3일을 보내는 것은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태블릿에 담아둔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앵그리버드도 엄청 많이 했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기 시작한게 이때부터 였던 것 같다. 바깥 풍경 구경도 많이 했는데 달려도 달려도 계속 같은 풍경이 나와서 쉽게 질린다. 기차 밖으로 작은 마을이 가끔씩 보이기도 했는데 정말 사람이 살고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두운 밤에 별자리를 보는 건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었다.

다음으로 정차한 곳은 벨로고르스크(Белогорск)다. 객실을 돌아다니며 사탕을 주던 꼬마아이. 자기가 벨로고르스크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지금쯤 훌쩍 자라지 않았을까?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질 무렵 기차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사실 바다가 아니라 아주 바이칼 호수다. 바이칼 호수는 바다로 착각할만큼 엄청나게 넓은 호수다. 바이칼 호수 주변에는 몽골 종단철도로 갈아탈 수 있는 분기점인 울란우데(Улан-удэ)가 있다. 몽골로 향하는 사람들은 내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칼리닌그라드에서 온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의 도시지만 아시아의 모습이 많이 드러난 곳이라고 한다. 한번 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곧 우리도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에 도착했다. 이르쿠츠크역에 내리자 “딱시"를 외치며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기사가 많았다. 택시 호객행위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겁을 먹기 쉬운데 무시하거나 필요없다고 하고 갈 길 가면 된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는 피곤해질 수 있다.

머물 숙소는 역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냥 걸어갔다. 이번에도 숙소를 못찾아서 길을 헤매다가 호스트가 직접 나와서 길을 안내해줬다. 에어비엔비를 이용했는데 가격도 나쁘지 않고 더군다가 바로 옆에 마트가 있어서 편리했다. 무엇보다도 기차를 타며 3일동안 제대로 씻지 못했기 때문에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던 것 같다.

배낭에 붙인 블라디보스톡과 이르쿠츠크 뱃지

바로 다음날 바이칼 호수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마트에서 사온 식재료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어차피 이곳에는 하루만 있을 예정이고 남겨봤자 버릴테니 마카로니 한봉지를 다 털어넣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졌다. 😅 다음 날 바로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 이르쿠츠크 버스 스테이션에서 바이칼 호수로 향하는 버스표를 끊고 주변에서 간단히 끼니를 떼웠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대자연경관을 볼 예정이었다.